그동안 국내에서 대형 SUV는 틈새 차종에만 머물렀다. 부담스런 차체와 낮은 연료 효율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형 SUV에 대한 인식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여러 개의 베이비 카시트와 커다란 가방을 부담 없이 실을 수 있으면서, 편하고 안전하게 주행하는 SUV 수요가 증가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안락한 여행의 동반자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부분 변경을 거친 신형 파일럿은 그간 아쉬웠던 편의 사양도 충실히 채워 넣으며 대형 SUV 고객의 니즈를 최대한 반영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을 상상하면서 경기도 화성과 충청북도 진천 일대에서 시승했다.
부분변경을 거치며 50mm가 길어졌다
부분 변경인 만큼 외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곳곳에서 보이는 신선한 변화는 상품성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강한 인상과 다부진 얼굴을 통해 존재감이 한층 높아졌다. 혼다의 최신 패밀리룩인 '플라잉 윙'을 라디에이터 그릴과 풀 LED 헤드램프도 또렷한 인상을 만드는 데 한 몫 한다.
측면은 대형 SUV 다운 기골장대한 덩치가 도드라진다. 여기에 크롬 장식으로 멋을 부린 몰딩 장식과 20인치 알루미늄 휠, 역동적인 디자인의 스키드 플레이트가 신차 느낌을 더했다. 부분변경으로는 이례적으로 크기 변화의 폭이 적지 않다. 길이는 50㎜, 키는 20㎜ 커졌다.
[출처: 혼다]
공간 활용도가 뛰어난 혼다의 패키징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패밀리 SUV인 신형 파일럿에서도 이러한 장기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운전석부터 3열까지 차례대로 앉아보니 뒷좌석 승객의 시야를 배려해 3열이 2열보다 더 높게 자리한 것을 알 수 있다. 3열도 공간이 충분하다. 형식적인 배치가 아니라 탑승객이 편하게 앉을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래도 어른보단 아이들에게 더 어울리는 공간이다.
2열 독립식 캡틴 시트는 착좌감이 좋을 뿐 아니라 타고 내리기 편하다. 물론 시트 조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트렁크는 기본 467L, 3열을 접으면 1,325L, 2열까지 접으면 2,376L까지 적재 공간이 확보되며, 짐이 승객석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칸막이 장치도 돋보인다. 곳곳에 자리잡은 컵홀더와 수납공간은 미국 중심의 자동차답다.
[출처: 혼다]
운전석에 오르자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오딧세이와 동일한 LCD 계기판 덕분이다. 주행속도, 냉각수 온도, 연료 잔량 등 기본적인 정보 외에도 계기판 가운데 위치한 LCD창을 통해 ADAS 작동 상태를 알기 쉽게 표시한다. 이번 부분변경에서는 상위 트림이 추가됐다.
그간약했던 편의 장비를 아낌없이 넣은 구성이다. 이제 국내 고객도 캐빈 토크와 리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앞좌석 통풍 시트, 2열 캡틴 시트가 달린 파일럿을 만날 있게 되었다. 또한 스마트폰 무선충전, 프리미엄 오디오, 전동식 테일게이트도 전 트림에 기본이다.
10.2인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애플 카플레이를 비롯한 다양한 기능을 품는다
2열 천정에 달아놓은 10.2인치 모니터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장시간 주행에서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번거로움을 꽤 덜어주는 장비다. 무선 헤드셋과 리모콘을 사용할 수 있고, HDMI 단자로 외부장치 연결도 가능하다. 캐빈 토크 기능은 꽤 유용하다.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운전석 마이크를 활성화하면 스피커와 헤드셋을 통해 뒷좌석 승객에게 목소리를 전달한다. 차 실내가 넓은 것을 감안해 마련한 장비이다. 다만 스티어링 휠 근처에 작동 버튼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말 한마디 하기 위해 매번 화면을 누르는 일은 무척 비효율적이니까.
[출처: 혼다]
파워트레인은 기존과 동일하다. V6 3.5L 직분사 엔진은 9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 출력 284마력, 최대토크 36.2㎏•m를 발휘한다. 다운사이징 터보가 대세가 된 요즘 세상에서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이 주는 호쾌한 주행 감각이 새삼 반갑다. 필요에 따라 실린더에 연료 분사를 중지하는 실린더 휴지 기술은 정속 주행에서 처럼 큰 힘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요긴하게 작동한다. 연료효율은 복합 L당 8.4km에 머무는데 풍채를 생각하면 납득할만한 수준이다.
자동변속기는 기존 6단에서 9단으로 단수가 세 개나 늘었고, 조작 레버도 버튼식이다. 가족과 함께 느긋하게 주행하는 차라면 적극적인 변속의지를 불태울 일도 없으니, 1열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 구성이 맞다고 본다.
[출처: 혼다]
파일럿의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은 평상시엔 앞 바퀴만 굴리다가 주행 상황에 따라 뒷바퀴에 동력을 전달한다. 어디까지나 온로드 주행에 걸맞는 시스템이며, 가벼운 비포장도로를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을 정도의 트랙션은 만들어낸다. 출발 가속은 무겁지도, 그렇다고 과격하지도 않다. 말 그대로 편안하고 가볍게 움직인다. 그렇다고 운전이 밋밋하고 재미없진 않다. 혼다는 대형 SUV에서도 운전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새로운 플랫폼 ACE로 빚은 덕분에 무게중심이 낮다. 또한 뼈대가 단단하니 움직임이 정확하다. 운전자 의도대로 정확하고 편안하게 차를 다룰 수 있으며, 고속도로 진출 구간에서도 안정감 있게 돌아나간다. 패밀리카의 중요한 덕목인 안전성도 한층 강화됐다. 후측방 경고와 교차로 충돌 경고가 추가됐으며, 전방추돌 경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도로이탈 경고, 차로유지보조도 기본이다.
이제 국내 대형 SUV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겁다. 수입 대형 SUV 베스트셀러 포드 익스플로러가 존재감을 발휘하는 가운데 현대 팰리세이드가 등장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상품성을 강화한 신형 파일럿도 관심을 더한다.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건 소비자 입장에선 반가울 일이다. 혼다가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3세대 부분 변경 파일럿을 적시에 투입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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