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그십 모델은 자동차 브랜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첨단 기술과 고급스러운 소재, 엄청난 노력이 만들어낸 대표 모델로 우아함과 기품을 보여줘야 하죠.
플래그십을 떠올리면 반짝반짝 광을 낸 검은색 차체와 커다란 크기, 진중한 사운드를 내뿜으며 도로 위를 ‘항해’하는 느낌을 주는 4도어 세단이 생각납니다.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의 플래그십은 세단이었기 때문이죠.
키가 크고 듬직한 덩치의 SUV는 플래그십이 요구하는 가치를 보여주기엔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레인지로버는 달랐어요. 50년 전인 1970년 6월, 랜드로버는 온·오프로드를 모두 아우르는 고급 SUV를 출시했습니다.
1세대 레인지로버는 세계 최초로 상시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탑재(1970년)하고 네바퀴굴림 자동차 최초로 ABS 브레이크 시스템을 탑재(1989년)하는 등 플래그십다운 모습을 보여줬어요.
50년의 세월 동안 레인지로버의 완전변경 횟수는 3번으로 현재 4세대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보통 자동차 세대교체 주기를 5~7년으로 보는데요.
특히 요즘은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레인지로버의 완전변경 횟수는 확실히 적습니다. 그 만큼 랜드로버가 각 세대별 레인지로버에 각별한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는데요.
플래그십 SUV, 럭셔리 SUV의 선두주자인 레인지로버, 50년 동안 사랑받아온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2020년형 레인지로버를 시승해봤습니다.
저희가 시승한 모델은 4세대 레인지로버 5.0SC 오토바이오그래피 LWB입니다.
이름이 굉장히 길고 복잡한데 하나하나 풀어보면 어렵지 않아요.
먼저 레인지로버는 모델 이름이고 5.0SC는 배기량이 5,000cc이며 슈퍼차저가 달린 엔진을 나타냅니다.
오토바이오그래피는 등급을 LWB는 일반 모델보다 휠베이스가 긴 모델(롱휠베이스, Long Wheel Base)을 말해요.
다시 말해 5,000cc 슈퍼차저 엔진을 장착한 오토바이오그래피 등급의 휠베이스가 긴 레인지로버입니다.
4세대 레인지로버는 2013년 데뷔해 2018년 부분변경을 거쳤습니다.
2020년형 레인지로버도 기존 모델과 앞뒤 모습을 비롯해 차를 꾸미는 세부요소가 전부 그대로여서 익숙한 모습이에요.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오랜 시간 변함없이 정체성을 이어나가는 레인지로버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눈에 익숙하지만, 존재감은 여전해요.
보닛 위 두꺼운 레인지로버 레터링과 수평을 강조한 앞모습은 다부진 인상을 보여주고 옆은 롱휠베이스 모델답게 길쭉한 라인이 인상적입니다.
레인지로버 5.0SC 오토바이오그래피 LWB는 길이 5,200mm, 너비 2,073mm, 높이 1,868mm의 거대한 덩치를 가집니다.
높이는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높고 휠베이스는 3,122mm로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 제네시스 G90과 비슷해요.
뒤태도 큰 변화는 없습니다. 반듯한 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유리창과 두 개의 네모난 테일램프, 직선을 강조한 트렁크 형상까지 전부 그대로죠.
2020년형으로 오면서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그레이와 네이비 외장 컬러를 추가했고 22인치 휠을 제공합니다.
실내는 단정하고 고급스럽습니다. 수직과 수평 구조를 강조한 센터페시아 형상은 기존과 같지만, 각 기능을 다루는 소프트웨어 구성은 폭넓게 개선했어요.
무선 카플레이가 적용돼 내비게이션, 전화, 문자, 지도, 음악 등 스마트폰 앱을 사용할 수 있답니다.
와이드 디지털 계기판은 안전 주행 장치 활성화 상황과 속도계, 내비게이션 화면을 분할해 한 번에 보여주며 헤드업디스플레이 구현 그래픽도 훨씬 다양해졌어요.
레인지로버 실내의 정점은 2열에서 나타납니다.
모든 시트는 전동으로 앞뒤 간격과 기울기 각도를 조절할 수 있고 핫스톤 마사지 기능이 기본으로 들어있어요.
최고급 세미 아날린 가죽을 사용하고 쿠션이 두툼해 안락한 실내 공간을 제공합니다.
또 열선은 시트뿐만 아니라 발과 다리 받침대 등 몸이 닿는 곳곳에 추가했고 버튼 하나로 양쪽 창문과 햇빛 가리개, 독서 및 무드등을 여러 단계로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함을 더했어요.
실내에 사용된 소재 또한 모두 고급입니다.
몸에 닿는 거의 모든 부분은 천연 가죽과 진짜 나무로 덮었죠.
거대한 후드 아래에는 V8 5.0L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이 들어있습니다.
최고출력 525마력, 최대토크 63.8kg·m를 발휘하죠.
8단 자동변속기가 합을 맞추며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5.4초, 최고속도는 225km/h입니다.
강력한 출력이지만, 한순간에 속도를 높이며 질주하는 스포츠카와 달리 플래그십 SUV로써 여유롭고 넉넉한 힘을 보여줘요.
물론 가속 페달을 깊게 밝으면 시원한 가속감을 보여줍니다.
공기 저항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풍절음과 바닥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랜드로버는 경량 알루미늄 구조를 적용하고 엔진 내부 마찰을 최소화해 진동과 소음이 감소했다고 밝혔어요.
또 흡차음재 범위를 넓혀 불필요한 소리가 들어올 수 있는 부분을 철저히 막았습니다.
정확한 수치로 얼마만큼 좋아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주행 중 탑승자가 느끼는 체감 정숙성은 웬만한 대형 세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요.
레인지로버의 승차감은 명불허전입니다. 특히 에어서스펜션 세팅 기술은 라이벌 중 최고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죠.
부드럽고 안락하면서도 불규칙한 도로에서는 성격을 바꿔 탄탄하게 차체를 잡아줍니다.
노면 상황에 상관없이 고른 주행을 도와줘 만족스러운 승차감을 완성해요.
레인지로버는 굽이치는 고갯길보다는 고속 크루징에서 제 능력을 보여줍니다.
여유로운 성능과 함께 안정적인 주행감과 높은 정숙성, 미끄러지듯이 질주하는 승차감 덕분이죠.
레인지로버의 수식어는 ‘사막의 롤스로이스’였습니다.
그러나 롤스로이스 컬리넌이 출시되고 사막의 롤스로이스는 컬리넌이 됐죠.
레인지로버에게 도리어 잘 됐습니다.
수식어에 다른 브랜드의 이름이 붙는 건 2인자에게 어울리지 오리지널 럭셔리 SUV에게는 필요하지 않아요.
50년간 브랜드 헤리티지를 이어오면서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한결같은 감동을 준 레인지로버의 앞으로 50년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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