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범퍼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사고 시 충격 완화가 먼저 떠오르실 겁니다.
망가지면서 충격을 흡수해 승객을 지키는 부품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범퍼는 차량의 수리비를 크게 낮춰주는 고마운 부품이기도 합니다.
만일 범퍼가 없는 상태로 사고가 난다면 가벼운 충격에도 전면 부품들이 쉽게 망가질 테니까요.
과거의 자동차는 단단한 금속 범퍼를 달았습니다. 1960년대까지 범퍼는 자동차 스타일링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어요.
매끈한 앞 모습을 자랑하기 위해 범퍼를 얇게 만들고, 번쩍이는 크롬 도금을 입히거나 애초에 범퍼를 달지 않기도 했죠.
멋은 있었지만 가벼운 사고에도 헤드램프 등의 부품이 쉽게 깨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플라스틱 범퍼는 1968년 등장했습니다. GM이 폰티액 GTO에 차체 색으로 칠한 플라스틱 범퍼를 달았죠.
GM은 TV 광고에서 망치로 플라스틱 범퍼를 쳐도 망가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홍보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철제 범퍼는 찌그러지지만, 탄성이 좋은 플라스틱은 쉽게 찌그러지지 않고 자체 복구가 되기까지 했으니까요.
이후 미국은 1972년에 새 범퍼 규정을 도입했습니다.
차량이 시속 5마일(약 8㎞)의 속도로 장벽에 충돌했을 때 헤드램프나 연료 공급 시스템 등이 망가지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죠.
그래서 5마일 범퍼라고도 부릅니다. 해당 법안은 저속 사고 시 자동차가 망가져도
안전하게 자력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동시에 수리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법규 도입 초기 미국 승용차는 다양한 범퍼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범퍼에 견고한 고무를 덧대거나 범퍼 안에 오일 및 질소를 채운 충격 흡수 댐퍼를 달기도 했죠.
이후 범퍼 기준은 1974년에 더욱 강화되어 앞뒤 범퍼의 높이까지 지정했습니다.
차량 충돌 시 범퍼의 높이가 비슷해야 충격 흡수에 더욱 용이하거든요.
1980년에는 한층 강화된 기준이 도입됐습니다. 시속 8㎞로 충돌 시 변형을 19㎜ 이하로 제한하는 새로운 조항이 도입됐죠.
해당 조항은 범퍼의 디자인까지 지정하진 않았습니다만,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해당 법규에 맞추기 위해 비슷한 모양의 범퍼를 달았습니다.
범퍼 크기를 키우고 완충 장치를 달면서 구조는 한층 복잡해졌죠.
그래서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의 경우 미국 수출 시 미국 시장 전용 범퍼를 달았습니다.
복잡한 장치 없이 단순히 우레탄 덩어리로 범퍼를 만들어 붙인 경우도 많았죠.
구조적으로 이런 범퍼를 덧붙이는 것이 불가능한 모델들은 미국 수출이 불가능했습니다.
단, 이런 조치들은 승용차에만 적용됐습니다. SUV의 경우 승용차 범퍼 기준을 적용받지 않았죠.
이후 미국은 1983년에 범퍼 기준을 바꿉니다. 예전에는 범퍼도, 차체도 단단할수록 승객이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범퍼 규정의 충돌 속도를 시속 8㎞에서 시속 4㎞로 줄이고, 승용차의 범퍼 높이 조건도 다시 수정했습니다.
이후 범퍼를 툭 튀어나온 형태로 만들지 않고도 충격 흡수를 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범퍼의 디자인은 한결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예전과 달리 보행자 안전이 중요해지면서 기능적인 진화도 이뤘습니다. 차체 일체형의 디자인임에도 충격을 잘 흡수하죠.
지금의 범퍼는 보통 범퍼 커버와 충격완화장치(에너지 업소버), 내부 지지대의 삼중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커버는 파손을 막기 위해 탄성이 좋은 플라스틱 재질을,
충격완화장치는 약한 충격 흡수에 유리한 폴리프로필렌 발포 소재를 주로 사용합니다.
내부지지대는 범퍼의 뼈대 역할을 하며 충격 흡수의 핵심이기도 하죠.
철이나 알루미늄 외에도 고강도 경량 복합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5마일 범퍼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차체 디자인과 완전히 별개로 보일 정도로 투박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나름의 안전 기준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잣대로 보면 또 맞지 않지요. 충돌 시 보행자의 안전을 크게 위협할 수 있거든요.
보행자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또 막상 강한 충격은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사라진
철제 파이프 범퍼(캥거루 범퍼)처럼 이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범퍼로 추억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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