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과거의 한때를 추억하며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는 것을 ‘라떼는 말이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원뜻은 기성세대의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왜 그러는가’라는 식의, 즉 잘못의 주체가 본인이 아닌 아랫사람에게 있다는 훈계 아닌 훈계를 비꼬는 말이죠.
지금은 원뜻은 물론 과거의 잘 나갔던 ‘나’를 이야기할 때 등에 두루 쓰입니다.
현대 싼타페는 국내 중형 SUV 시장의 절대 강자였습니다.
항상 판매량 순위권에 오르며 SUV 시장을 대표하는 모델이었죠.
한집안 식구인 기아 쏘렌토는 싼타페에 밀려 2인자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싼타페의 인기는 지금의 4세대(2018년~현재)로 넘어오면서도 유효했습니다.
2018년 초 4세대 출시 당시 15개월 연속 판매 1위를 하던 그랜저 IG를 제치고 판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요.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철옹성일 것만 같던 싼타페도 4세대(2020년~현재) 쏘렌토 출시 후 왕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판매량에서 항상 밀리던 쏘렌토가 호평을 받으며 1인자인 싼타페의 자리를 흔들었고 이에 질세라 싼타페도 부분변경 모델을 선보였지만 결과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한때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살짝 주춤한 모습이에요.
물론 지난달 승용차 신차등록대수 11위에 오르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지만 쏘렌토가 6위를 차지한 것을 생각하면 성적이 예전만 못합니다.
상황이 이쯤 되어 마치 라떼를 외칠 것 같은 싼타페를 KB차차차가 만나봤어요.
이번에 경험한 4세대 싼타페 부분변경 모델(이하 싼타페)은 싼타페 중 가장 높은 등급인 캘리그래피 트림입니다.
캘리그래피의 겉모습은 일반 모델과 조금 달라요.
사다리꼴 패턴을 추가한 라디에이터와 인테이크 그릴, 독특한 모양의 20인치 전용 휠, 어둡게 칠한 프론트 그릴, 리어 스키드 플레이트 등 몇 가지 전용 디자인이 적용됩니다.
전용 디자인이 적용된 싼타페 캘리그래피의 외관은 독특합니다.
좋게 말하면 혁신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부담스럽죠.
처음 등장할 때의 파격적인 느낌은 어느 정도 희석됐지만 입을 잔뜩 벌린 듯한 앞모습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겉모습에서 느꼈던 충격은 사라지고 부분변경 모델이 보여주는 긍정적인 부분이 눈에 들어와요.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은 시인성이 좋을 뿐 아니라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고 10.25인치로 커진 센터 디스플레이도 테슬라나 요즘 수입차가 선보이는 거대한 디스플레이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맘에 듭니다.
지금의 디스플레이나 센터페시아는 나중에 완전변경을 거치면 투싼 4세대처럼 하나로 묶어 조금 더 최신의 모습을 갖출 것으로 예상해요.
최상위 등급답게 실내도 일반 모델과 조금 다릅니다.
먼저 실내에 사용된 소재에서 차이가 있는데요.
반 펀칭 가죽 스티어링 휠이나 알루미늄 소재로 마감한 센터 터널, 트레이 커버, 퀼팅 패턴 시트 등 캘리그래피 전용 사양이 듬뿍 들어갔습니다.
이번에 시승한 싼타페는 디젤 모델로 스마트스트림 디젤 2.2 엔진이 장착됐습니다.
최고출력 202마력, 최대토크 45.0kg·m로 부분변경 전 모델과 수치는 같죠.
제원상으로는 달라진 게 없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는 많은 변화를 이뤘습니다.
배기량은 이전보다 48cc 줄었고 연료 분사압은 2,200바(bar)로 200바 높아졌어요.
변속기도 기존의 일반적인 8단 자동변속기에서 자동 8단 듀얼클러치(습식 DCT)로 바꿨습니다.
현대는 싼타페 출시 당시 플랫폼 변경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덕분에 이전과 크기도 달라졌고 경량화도 이뤘죠.
범퍼 빔 소재를 알루미늄으로 바꾸고 리어 플로어 크로스 멤버를 일체형으로 바꿔 무게는 줄이면서 강성을 높였습니다.
또 엔진 실린더 블록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바꿔 엔진에서만 19.5kg의 무게를 덜어냈어요.
그 결과 공차중량은 이전보다 50~60kg 줄었습니다.
엔진에 변화가 있지만 시승하는 동안 이전 모델과의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싼타페나 쏘렌토를 통해 익히 느꼈던 R 엔진의 힘과 회전 질감 그대로였죠.
1,750rpm부터 터져 나오는 두툼한 최대토크와 가벼워진 무게 덕분에 덩치 큰 SUV임에도 시원한 가속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2,500rpm을 넘기면서 거칠어지는 회전 질감은 다소 아쉬워요.
새롭게 바뀐 변속기는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주행 모드와 관계없이 변속을 빠릿빠릿하게 하며 수동 모드에서도 운전자의 조작을 적극적으로 따르죠.
킥다운도 그동안의 현대차답지 않게 기민했습니다.
차의 움직임도 이전과 비교해 깔끔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워졌고 높은 속도에서도 이 특성을 잘 유지하죠.
휠 크기가 커졌음에도 노면 요철을 지날 때 충격이 크고 선명했던 이전 모델보다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SUV라는 성격에 맞게 서스펜션을 잘 세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옵션인 HTRAC(네바퀴굴림 시스템)은 계기판에 표시되는 것처럼 구동력 배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다고는 느껴지지 않아요.
부분변경을 거친 싼타페는 확실히 이전보다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외모 때문에 많은 장점이 가려짐 감이 있죠.
물론 외모 하나 때문에 왕좌를 놓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1위로 오르는 것보다 힘들기 때문이죠.
만족감과 아쉬움이 교차하지만 아직 라떼를 외치며 과거의 영광을 말하기엔 이른 듯합니다.
싼타페가 이번을 교훈 삼아 앞으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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